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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16. 2. 16. 11:01 노는사람/역마

 대학교 때 "꽃미남 3인방"으로 불리는 선배가 있었다. 당시 전 학번을 아울러 상당히 미남들이었는데 그중 한 선배는 흰피부에 미남이긴 했지만 조금은 무서운 인상이어서 내심 좀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그시절에 누구나 그렇듯 전반적으로 조금씩 삐딱한데 나는 좀 그 강도가 아주 강렬했고(싫다. 그때의 나) 그 선배와 충돌이 한번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것이 잘 풀어졌다. 나의 수많은 단점중에 한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잘못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면 빨리 승복하는 편이다. 더 버티는건 너무 챙피하고 자존심을 더 갉아먹고 결과적으로 그런 추한 사람이 되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시행착오를 크게 겪고 난 뒤의 일이고 학창시절엔 언제나 그렇진 못했다. 다행히 그 선배와의 문제는 내가 그걸 깨닫고 난 뒤였기 때문에 빨리 내가 잘못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선배와 많이 가깝게 지내진 못했지만 그 경험으로 선배는 나를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같고 같이 있을 기회가 생기면 나에게 매우 잘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실제 나라는 사람보다 과할정도로 높이 칭찬해주었고 넘치게 잘해주었던 것 같다. 그것이 고맙다는걸 지금 느끼게되어 안타깝지만 짧은 기간 상당히 융숭한 평가를 받아서 미안하고 고마운 선배로 기억한다.


 졸업하고는 훨씬 뒤, 지금으로 부터는 적은 두해 쯤 전 레진코믹스와 계약서를 막 쓰고 난 뒤 다른 선배의 결혼식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선배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겨내고있었고 긴 머리를 묶고 바이크를 타고 나타났는데 얼굴은 더 검고 약간의 고생의 흔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학교 다닐때는 특별히 '우와~~~~ 잘생겼다! 하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 선배가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결은 다른게 아니었다.


 당시 대부분의 우리들은 출판만화의 몰락, 그래픽업계의 몰락, 2차외환위기로 많이들 힘들었고 힘든 경험을 했고 포기하고 흩어지고 사라졌다. 나는 그걸 계속 비관하고 살았고 학교다닐때의 폭력성(?)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냥 찌글찌글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었다.(지금ㅇ느 찌글은 아니고 쪼글) 

선배는 일찌감찌 결단을 내려 그쪽 일을 버리고 다른일을 선택했는데 자신이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해서 오히려 더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몸은 고되지만 적절한 수익을 주는 일을 하고있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고 나처럼 그림그리는 일을 증오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사랑도 하면서 사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검고 거칠어진 피부 위로 얼굴은 시종일관 웃고있었는데 학교 다닐때는 그렇게 웃는 모습을 아주 조금 밖에 못보았던 것 같다. 가만히 있을때는 그래도 어떤 장벽이 있는 무서운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혼자있으나 누구와 있으나 얼굴이 웃고있는데 그것이 가식이 없고 진짜 속에서 배어나온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태어서 처음으로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얼굴이 너무 좋아졌다" 라고 말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xx선배 진짜 얼굴 좋아졌더라 정말 부럽다' 라고 한다. 그리고 내 또래이 어느 누구에게서도 아직 그런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선배는 진정 꽃미남이었다. 


 이제 30대중반쯤 되니까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조금씩 와닿는다. 십수년간 내 얼굴을 보았던 남자친구도 내 얼굴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나도 남자친구에게 그의 변화를 이야기할 수있다. 우리는 사는게 좀 쪼들리지만 그걸 헤집고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남들도 볼수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우리끼리 있을 때만 그런 얼굴을 만들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섞여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게 매우 두렵고 '경계'가 된다. 그건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내면이 많이 닦이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살이 찐 몸을 한탄하면서 날씬하던 때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남자친구는 '지금이 훨씬 예쁘다'고 한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날씬하던 시절의 나는 나의 가장 어두운시절로 폭력적이고 적개심이 강하며 내 능력의 파악은 안되면서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다. 불만이 많았고 싫은것이 많았다. 기질적인 문제가 있어서 지금도 싫은것은 많지만(푸헤헤) 싫은것은 그냥 싫은것이지 싫다는걸 확성기에 대고 말하고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땐 그냥 확성기를 휴대하고다녔다. 그러니 그게 얼굴에 드러나는 것이다. 젊은 사람의 얼굴이 그렇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 목표는 50살이 되면 미인이 되는 것이다. 살을 빼거나 화장품을 바르는것은 지금도 가능하지만 그런 미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쪼글쪼글 해도 얼굴이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품을 쓰는 것 또한 나의 기분을 좋게 하고 힘을 넘치게 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를 완전히 이루어주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 미인이 되면 사람들을 좀 많이 만나고 다닐 것이다. 50살이면 남의 말에 적절한 거절을 하거나 내가 거절을 당해도 충분히 지혜롭거나 예의를 갖출수 있는 사람이 될것이다(라고 믿고 노력해야된다는거 알아) 다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어색하고 어렵고 왠지 조금은 더 약자의 입장이고(왜 그런.. '젊은 여자'라는 입장) 그런 어려움을 정면돌파하기에는 정신력이 버텨줄 것 같지 않다. 상처에 맞서기 어려받기 보다 내가 상처를 주게될 것이 좀 더 무섭다. 젊은 혈기란 그런것이 뜻하지 않게 쉽기 때문이다. 좀 더 젊은 시절에 내면과 싸우고 노년을 사람들과 보내고싶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노년이 외로워질 거 같다.


  


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