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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14. 10. 18. 19:33 노는사람/역마



 **** 글이 상당히 길고 생각보다 사족이 있습니다. 너무 무료해서 미치겠다 싶을때 다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

 시간이 너무 지난 일이지만 남겨놓은 기록이 아깝고 또한 남겨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늦었지만 정리해놓았습니다. 
지난 9월1일 세월호 참사 국민단식에 만화인 단식(10월 19일현재 52일차릴레이)에 하루 참가하였으며 유민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이며 정청래의원이 단식 11일차이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참가한 날은 만화인 단식 12일차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8월 광주 100인의 릴레이 아트 참가의 인연으로 공성술 선생님으로 부터 만화인 동조단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서울,부천등지에서 밤새러 내려와주신 선생님들의 노고에 대한 의리와 개인적으로 항상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보편적인 선의에 따르기위해 이번 단식에 9월1일 당번으로 참가하게되었습니다. 

 시사만화가 협회장 천명기 선생님과 같이 당번이었는데 천명기 선생님 강의시간과 마감이 이상하게 꼬여버려서 원래 낮에만 하기로 했던 계획을 바꾸어 그날 하루를 굶게되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전날 자장면 먹은게 체해서 아침까지 설사를 좀 하던 저는 오후 3시쯤까지는 허기를 덜느꼈지만 계속 물만먹다보니 이후 간헐적 설사와 격려방문한 선생님들의 '추석선물로 배가 왔네'등등의 음식 썰로 인해 상당히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탈은 나았습니다. 간헐적 단식이 몸에 좋다는게 이런것같습니다. 

 100퍼센트 진지모드가 되면 상당히 공격적인 언행과 버릇없는 말투가 자꾸 진행되기 때문에 
적절히 유머를 섞어서 진행해보겠습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가벼운 참가기처럼 올리지만 놀러가는 마음으로 광주에서 올라간것은 아니었구요 그러므로  참가했던 저의 진심은 진지하게 기억해주세요






 전날 당번이신 남기보선생님과 김미애 선생님과 바통터치를하고 단식등록을 하니 손목에 저런 헤나를 찍어주었습니다. 샤워를 해도 안없어져서 이틀 그냥 있었더만 뜯으면 되더군요 무식인증 








 월요일에다가 대학생들 개강날이라 지하철은 엄청 붐볐는데(언니집인 군포에서부터 환승하고 한시간을 왔는데 단 한순간도 앉지 못했어요 ㅠㅠㅠ) 농성장은 한산했습니다. 열두시쯤까지는 저 혼자 천막안에서 ... 열심히... 콘티를 짰어요. 일 다했음. ㅋㅋ



 이날 5개 대학(학교이름은 다 못들었어요 ㅠㅠ)에서 수업거부 기자회견을 했는데요 여기서부터는 그냥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2000년대 이후 학번이자 비권연합(비운동권연합) 이었던 저로서는 이 학생들이 상당히 대견하면서도 '말을 잘 못한다'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학생 대표이지만 대학생들은 삶에 지쳐 분명 이런 문제에 마음은 동할지라도 행동하기는 어렵거나 관심이 없을 것이고 학생회에서 착출된 인원임이 분명하지만 2000년 이후 상당히 정체성이 모호해진 운동권의 행보와 학생들의 활동을 기억할때(대학교때 단과대학생회였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있는지 모를 확률도 굉장히 있다..는것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성에 젖어있던 2000년대 운동권들의 조리있는 언변의 힘은 생각보다는 세뇌와 같은 열혈이었고 비권연합이 이길 수 없는것은 바로 맹목적이다 시피했던 신념에 의해 말하나는 기똥차게 잘 했기때문입니다. 말을 잘 한다는것은 확신, 자기의 선택에 대한 믿음. 그에 따른것이니 웅변의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에게 힘이 없이 느껴진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하고 지하철역을 따라 행진을 한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기사를 찾아봐야겠습니다. 
그 날 개인 시민참가로 4일단식하고 휴지기를 가지고 방문오신 어르신이 왔었는데 대학생 수업거부 이야기를 듣고 많은 기대를 하셨던것 같습니다. 100명쯤 왔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시대의 흐름이고 대학생들은 보편적인 선이나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생각하는것을 강탈당해왔기 때문에 많이 어려울것입니다. 이것 만큼은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전내내 한산했습니다. 어버이연합의 확성기 선동이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발음을 잘 못하셔서 뭔소린지 못알아드르므로 그냥 패스 했습니다. 농성장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이날 어버이연합에서도 농성장 침투는 별로 안하셨습니다. 간혹 한두분 왔다갔다하면서 시비 걸었지만 역시 발음이 안좋아 무슨말인지 몰랐으므로 패스. 경찰이 와서 저지하고 데려가서 어버이연합 아저씬줄 알았어요. 몰라봐서 미안해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도구가 없어서 교보문고로 건너가 조금 사오려고했는데 천막을 맡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식 11일째였던 정청래의원과 문인작가들이 조금씩 들어오시는걸 보고 번개같이 달려가서 종이와 마커 득템...근데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푸트코트 생겼더군요. 그런 사악한... 아무생각없이 '점심은 여기서 먹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젠장. 앞뒤로 '단식1일째' 피켓 뻔히 붙이고 푸트코트로 갈 뻔...






슬슬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팬이라고 어떤 남자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만화가가 맞긴 맞구나 라고 느낀순간.
트위터에 농성참가한다고 하나 올렸는데 이 날 팬이 세분쯤 다녀가셨습니다. 데뷔전 네이버 베스트도전에 올리고 있을때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소리인데 앞으로 작가생활 오래하고싶으면 정치적 성향은 안드러내는게 좋을겁니다 당신 생각해서 하는 소립니다" 

 라고 덧글이 달린 적이 있습니다. 악플인지 아닌지 알수없는 묘한 글에 기분이 상당히 나빴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응원한다고 직접 용인에서 찾아오신 분까지 있으니 몸둘바를..그리고 개인적으로 무도를 연마하고있는데(풉) 그 단체 이사님이 단식끝나면 먹으라고 녹용즙(한의사이심..)을 갖고 오셔서 배고픈데 밤새 유혹을 물리치느라 혼났습니다.




팬이 주신 물건들 얼음팩(덥고 당떨어지면 머리아프니까 쓰라고 주셨어요), 엽서(그냥 주고싶었대요ㅎㅎ) 부채, 에비앙ㅋㅋㅋㅋㅋㅋ 물밖에 줄게 없어서 제일 비싼거 사오셨대요
그리고 기분내고 마시라고 얼음컵이랑 빨대도 갖고오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허세를 느끼기 위해 옆에 있는 정수기에서 에비앙 물병에 수십번을 리필해 먹었습니다. 
항상 순위권 하위에 있지만 편집부에서도 인정해주는 고정팬의 이런 마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오늘도 그려봅니다.






혼자서 물뜨고 붓씻고 어쩌고 하면서 천막 비우기가 뭐해서 안에 있던 크레파스와 마커로 그려보았습니다. 
글씨가 왜 저렇게 되었는지..-_- 

야구선수 요기 베라의 명언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를 저렇게 썼습니다. 흠...





팬이 주신 부채에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있었습니다. 두고왔는데 잘 쓰고 계신지요...아니면 저멀리.. 흑..








오후에 우만연 김광성 선생님과 이희재 선생님께서 격려방문 해주셨습니다. 
사실 광주 행사때 저도 작가로 참여하긴 했지만 꼬랑지로서 역할이 많았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뒷풀이에 같이 참석하지 못했고
선생님들이 참가하신 전시장 행사에도 같이 있지 못해서 아무도 제대로 인사를 못드렸습니다. 이 날 처음으로 제대로 인사드리고
유신정권부터 지금까지의 흐름과 사람의 역할 등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상당히 놀라웠던 것은 흔히 비뚤어지게 남을 수 있는 운동권의 잔재나 흔적과 같은 역사가 아니라 잔잔히 흘러가면서 저와 전혀 괴리감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분위기였습니다. 전 혼자있는데 큰 선생님들이 오셔서 화장실갔다가 설사하다 말고 놀라서 뛰어왔지만 나중엔 매우 편안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대뜸 김광성 선생님께서 캐릭터 하나 그려달라고 하셔서 댕시를 그리고 필명과 이름을 적어드리는 일을 ㄷㄷㄷㄷ
그래서 선생님께서도 .... 




저 그려주셨어요 - 하앜하앜 실물 비교하시면 곤란 제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리신거라고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중간에 신명환 작가님이 격려방문해주셔서 몰카 한방 해주셨습니다. 








이날 국지성 호우로 광화문에 비가 안올때 노량진에 비가 온다는 소릴 듣고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광화문에도 왔습니다. 
우산이 없으신 선생님들은 본의 아니게 갇혀서...저는 덕분에 더 오래 같이 있었습니다 ㅎㅎ



포기하시고 그냥 덤덤히 농성장분위기를 찍고




그리셨습니다 ㅎㅎㅎ



18시부터 5대종단 기도회, 19시부터 촛불문화재였는데 우천으로 약간 지연되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이희재 선생님께서 오실때마다 스케치하신 농성장풍경. 잘 찍어서 유포해달라고 하셨는데...파노라마 찍다가 손을 거시기해서..

이렇게 유포해도 될런지 모르겠어서 아직 어쩌나 고민..중입니다. ㅠㅠ


선생님들이 가시고 비가와서 계속 물을 쓸어내고 어쩌고 하다보니 너무 지쳐서 8시 20분쯤부터 저는 완전 지쳤습니다. 
눕고만 싶었는데 옆에 정청래의원이 너무 하루종일 정좌하고 앉아있는데다가 정치인들이 여럿 지나가고 주변인들이 일어났다 앉았다하는데 왜그리 눕기가 민망하던지요 좀 편히 앉을까 했더니 스님들이 또 우루루 몰려와서 민망한 순간이 여러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엔 정말 지쳐서.. 열시 반쯤 부터 하여 담요를 둘러메고 누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정말로 잠이 들었습니다. 
동조단식 12일차 최초로 11시전에 잠든 참가자로 기절숙면을 취하여 새벽에 격려오신 김진선생님께서 차마 깨우지 못하고 커다란 생수 두통을 머리맡에 두고 가셨습니다. 

중간에 시인 정한별 선생님이 이도헌선생님의 부탁을받고 모아놓은 하트그림을 찾으러 오셔서 부득이하게 저를 흔들어깨워 추한 몰골로 인사를 드리고 새벽녘에 늦게오신 천명기 선생님과 인사한 기억이 있지만 꼭 다섯살때 기억처럼 희미합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자서 일찍 일어났습니다 새벽 여섯시 40분쯤 -_-;;;;;;;;;;;;
잠결에 어렴풋이 방송을 듣기로는 자리가 많아서 충분히 남녀 나누어서 천막에서 다 잘수있습니다~ 하더라구요
게다가 정청래의원이 있던 자리에 여성분들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시길래 이쪽에서 여성분들이 주무시는줄 알았는데
일어나서 보니 제 주위로 보이지않는 바리케이트가 3인분정도 만들어진채로 우로는 남성세분이 좌로는 정청래의원이 저 멀리 구석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몰골이 너무 아니어서 "쟤는 새벽부터 뭐하나" 라고 쳐다보는 경찰들을 뒤로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드라이샴푸로 머리를 수습하고 오면서 도시의 공기(?)를 만끽하였습니다. 















우측에 신티크 캠패니언으로 또 열심히 일하고계신 천명기 선생님. 저는 광주에서 오고 천명기 선생님은 대구에서 오고 이야기 꽃이 뒤늦게 피었습니다. 전날 같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가득한 반나절이었습니다. 웹툰시대에 시사만화의 길이란.. 그리고 대구에서 좌파로 살기.. 부산출신으로 광주에서 살기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다음당번인 김숭늉작가님이 오시면서 저의 단식은 끝이 납니다. 



<에필로그>
 우선 현장을 보고 인상깊은것은 경찰이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복잡해집니다. 오랜시간동안 시위문화가 자리잡은 광주에서는 옛날같이 큰 시위가 없습니다. 실상 광주시민들은 한이 있기는 하지만 순합니다. 시쳇말로 바보도 많고요. 그만큼 옛날 그 때는 정말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밟아 꿈틀했던 큰 일이었던것이지요. 광주에서 하는 집회만큼 심심한게 없습니다. 무슨말이냐면 그만큼 집회 신고, 처리, 보호 이것이 관과의 합동이 잘 됩니다. 공무원들이 다른건 잘 못해도 그거하난 잘합니다. 

 집회하는 날은 경찰이 한 차선을 시위대를 위해 확보하고 시민을 향해 서는것이 아니라 시민을 등지고 밖을 향해 섭니다. 이것이 상당히 큰 의미 입니다.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시위가 끝나도록 인계합니다. 그리고 한차선 확보했다고 딱히 시위대를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차가 막히니까 신경질을 내는거지 시위대를 욕하진 않아요. 그리고 지역방송등지에서 집회가 있는날은 미리 방송하고 알려주고 집회장소가 거의 뻔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장소에는 의례 현수막이 미리 걸려서 몇월 몇일 집회가 있는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많이 알게되기 때문에 '오늘 거기 집회있다' '막히겠네 에이씨' 이정도입니다. 

 몇 번 시비와 언쟁이 오가는 사이 유심히 보면 결국 그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집회 장소를 보호하는것은 경찰이었습니다. 
보통 '쟤들도 시키니까 저러는거지' 라고 하는말과 상당히 복잡미묘한 마음이 오갑니다. 아까 왔던 그 어버이 할배가 또 들어오면 집행위에서 그 사람을 잡고 경찰 한명을 보고 눈짓합니다. 그럼 경찰이 아이고- 하는 표정을 하면서 와서는 그 사람을 데리고 나갑니다. 

 광화문을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충돌의 순간 마찰의 순간. 사실 그 순간이 오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도 경찰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위계와 정말로 '참 난감한' 머리를 가진 윗사람이 그 속에 있기에 그 모든것이 행해지는 것이지만. 그들도 결국 한 국민이고 시민임이 마음이 아픕니다. 



 


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