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만화가. 업무문의 daduregi@gmail.com 070-8272-1911
다드래기
2014. 6. 23. 16:40 노는사람/화면




 몇년동안 프린지를 매 회 상당히 꼼꼼하게 봤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정주행했더니 대략의 소재와 에피소드만 기억하고 어떤내용인지 기억 못하는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놀랐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기도 한 드라마. 그래서 중도에 떨어져나간 사람도 많고 시청률도 대박칠정도는 아니었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내가 궁금해하고 알고싶어하고 만들고싶어하는 세계관과 기가막히게 떨어져서 매우 좋아했다. 

 평행우주론, 다원우주론 그리고 적당히 어두울 수 밖에 없는 미래. 


 몇몇 에피소드와 더불어 마지막회에서는 결국 또 눈물을 쏟아냈으니. 감히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영역을 침범했음에도 함부로 '신'을 다시 찾아 인간성을 억지로 신의 아래 갖다붙이는 서양철학의 스타일이 아니라서 참으로 마음에 들었던 드라마다. 주인공 월터는 끊임없이 속죄를 외치고 어떤 속죄의 증거를 원하지만 그 속죄는 스스로 풀어나간다. 끊임없이 돌고 돌게되는 하얀튤립. 기적은 없다. 다만 인간은 죄를 안고 서로에게 기댈 뿐.


 사춘기 때 칼세이건의 콘텍트를 보고나서 이른바 '멘붕'에 시달렸는데 난 과학자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그 사람 참 매력적이다. 

예전에는 과학자이면서도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과학자에게 신앙이란 창과 방패같아서 자신이 신념을 가지고 있는것에 따라 추구하는것과 결론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것을 알고 난뒤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렇다. 그것이 미신이든 신앙이라는 이름이든 한 사람의 과학자가 되어서 자신의 신념을 정하고 그것을 믿고 결론을 도출하기위해 흔들리지 않는다는건 상당히 멋있고 또한 과학자 답고 믿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문사회과학은 얘기가 다르다) 칼세이건은 끝까지 무신론자였지만 그의 유언과같은 유작을 보면서 '무신론자'라는것을 '비인간성'과 일치시킨 인간들의 무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네이버 캐스트에서발췌


나는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나 나의 일부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이 강렬한 만큼 나는 그것이 헛된 바램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 사후 세계가 있다면 내가 언제 죽음을 맞이하든(…)나의 호기심과 갈망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이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크고 깊은 사랑과 선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예쁘게 포장된 사후 세계의 이야기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 편에서 죽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증거도 없이 예쁘게 포장된 사후세계의 이야기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 신을 믿지 않아서 불경한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신앙이라는 인간의 발명품이 필요가 없을 뿐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신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다. 



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