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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14. 3. 15. 21:26 노는사람/화면
*이글은 2013년10월 왓챠에 기고된 글입니다.

 



모성

그 사랑과 집착의

백지장

 


 

 

 

 

 

 2009년, 극장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난감하던 순간이 있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다 닳으신 엄마의 모성을 확인하러 갔다가 말할 수 없는 번뇌로 가득 찼다.바로 봉준호 감독의 홈런타 ‘마더’ 때문이다.뮤즈 ‘김혜자’에 의해 만들어진 ‘마더’는 ‘로렌조 오일’이나 ‘세븐데이즈’에서 보았던 자식 사랑의 승리, 어머니의 사투를 그린 영화인 줄 알았다. 알맹이만 모아놓은 티저 영상이 그러했고 전원일기의 영원한 마더 김혜자의 출연이 그러했다. 오랫동안 스크린과 떨어져 있던 김혜자가 장애를 가진 외동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프지만 감동적인 영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극장을 나오면서 고민하고 논쟁하였고 저녁밥은 모래알을 씹듯 입맛이 없었다 당시 분위기 좀잡아보려 했던 수많은 서남 서녀들이관람 후 이어진 불편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모성에 관해 논쟁을 하다가 돌아섰다나 뭐라나 믿거나 말거나. 

 

2012년 이제 린 램지의 영국발(發) 마더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김혜자만큼이나 비쩍 마르고 신경쇠약을 숨긴 틸다 스윈튼이 사람들을 찾아왔다. 모성의 안드로메다를 보여준 엄마 김혜자를 이제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찰나 전혀 모르는 새로운 감정에 갈등했다. 혹자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 했고 누군가는 ‘결국은 엄마만이 알 수 있는’ 모성의 또 다른 사례라고 한다. 아, 복잡하다. 자식이 없으니 더 어렵다. 하지만 필자 역시 ‘엄마’는 있기에 오늘 이 안드로메다만큼알 수 없고 지옥만큼 깊으며 정확히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모성에 대해서 생각해볼까 한다

 

 

■ 나중에 다 알게 된다는 거짓말

 

누구나 겪는 비극의 수험생 생활, 우리는 오랜 기간 ‘엄마의 거짓말’에 속아왔다. ‘대학 가면 살 다 빠져’, ‘남자친구는 다 생겨’, ‘크면 다 알아’ 수많은 경험자들이 이것이 순도 100퍼센트의 뻥임을 토로해도 숨구멍 하나 없는 삶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믿어오지 않았던가. 제발 다 알게 되기를. 대학을 가도 어른이 되어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이제 엄마만이 아니라 주변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결혼하면 다 알아’, ‘애 낳아보면 다 알아’ 정말로 저절로 알게 되는 걸까? 

 



  봉준호의 ‘엄마’는 아들 ‘도준’이를 굉장히 절실하게 구하여 낳았다. 영화에서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해 직접적으로 회고하지 않지만 거의 유일한 이웃 미선(전미선)에게 돈을 빌리면서 ‘아이 갖는데 좋은 약’을 지어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그 약을 먹고 귀한 아들 ‘도준’을 얻었고 얼마나 도준을 낳는 것이 절실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대단한 결과물을 얻었는지 말한다. 그 찰나의 대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절실함은 그녀가 ‘자식을 낳는 것’이외에는 삶의 의미가 없었으며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예상하게 한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에 자아는 없

었을 것이고 오로지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힘이 되어 줄 자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로지 아들과 단둘이 남은 그녀의 현재가 말해주고 있으며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 와중에도 한약을 먹이는 행동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

 

케빈의 ‘엄마’ 에바(틸다 스윈튼)은 얘기가 좀 다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미 그녀가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지 이야기해준다. 스페인 토마토축제를 즐기는 그녀는 군중 속에서 오롯이 혼자이면서 외로움과 거리가 멀다. 에바의 아들 ‘케빈’은 혜자의 ‘도준’과 달리 절실함이 아니라 완벽한 자신의 삶에 갑자기 나타난 존재다. 혜자는 모성이 자신의 삶에 새로운 목표이자 변화이길 바랐고 에바는 완전하다 믿는 자신의 삶과 계획에는 없던 극적인 사건이다. 아들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혜자와 ‘끔찍할 수밖에 없는’ 에바는 어떤 문제에 당면했던 것일까

 

 기본적으로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모성의 ‘절대적인 힘’을 중요시했던 한국사회에서 ‘산후 우울증’이란 것은 ‘많이 배운 여자의 이기심’으로 치부되기 일수였고 지금도 왕왕 그런 설전들이오간다. 출산 후 여성들에게

 다량 분비되는 호르몬 ‘옥시토신’은 모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만족감, 행복감, 신뢰감을 주고 자녀와 교감하면서 세상에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가지게 해준다. 이 옥시토신은 ‘사랑’으로 육아의 스트레스에 저항을 줌과 동시에 외부적인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그 ‘사랑’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많은 산후 우울증 환자들이 스트레스에 의해 옥시토신의 분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이는 ‘이기심’이나 ‘강한 자아의식’이 문제가 아니라 핵가족화에 의한 육아부담, 맞벌이를 함에도 육아는 엄마에게 거의 전담되고 있는 현실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옥시토신의 분비는 어떤 ‘의지’에 의해 발생하고 조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모의 ‘악마성’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직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임과 동시에 세대 간 몰이해의 결과다. 전업주부가 대부분이던 윗세대와 맞벌이가 아니면 살기 힘든 지금 세대는 육아의 환경이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도 많이 다르다. ‘내가 해봤는데’로 시작하는 어른 세대의 같은 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징벌’과 같은 비난이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수많은 산모들을 절망하게 하고 치명적인 결과로 이끌기도 한다.   

혜자나 에바나 모두 정상적인 환경에서 아들을 얻지 못 했다. 혜자의 모성은 인생의 탈출구이며 유일한 목적이었고 에바에게는 사건이고 방해꾼이었다. 두 사람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만들어낸 ‘아들의 성장’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이 영화들은 각각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람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 뮤즈 김혜자와 틸다 스윈튼




 

봉준호의 마더는 굉장히 한국적인 분위기에 한국적인 어머니의 대명사인 ‘김혜자’라는 뮤즈의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동안 양촌리에 갇혀있던 김혜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모성이 극단에 치달으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었을지 모르지만 감독이 심어놓음 김혜자라는 장치는 많은 번뇌를 불러왔다. 김혜자는 마더 그 자체였다. 자상함과 인자함의 마스코트였던 김혜자의 모습에 숨겨진 깡마르고 신경쇠약의 모습은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갈라지는 외침에서 묻어 나온다.도준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고물상 주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김혜자의 단호한 표정과 빙의된 듯 단호하며 떨리는 목소리는 낯설고 충격 그 자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스토리였을 마더를 더욱 큰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김혜자 자체에 묻어있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고 인내하는 미덕의 어머니 안에는 어떤 폭발적인 감정이 숨겨져 있을 것인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기대했던 것에큰 반전을 안겨준 공에는 김혜자 그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틸다 스윈튼을 기억할 때 ‘올란도’나 ‘콘스탄틴’에서의 신비롭고 중성적인 모습들을 많이 떠올린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존재인 그녀는 또한 남들과 다른 세상에 있고 싶어 했던 에바 그 자체다. 케빈의 육아에 지쳐 바짝 마른 에바와 모든 명성과 부를 잃고 오로지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 에바의 모습은 그동안 그녀에게서 느꼈던 중의적이고 중성적이었던 이미지와 모든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두 사람의 뮤즈는 복잡 미묘하고 한마디로 정의하고 단죄할 수 없는 복잡한 모성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데 완벽한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모성은 하나의 틀 안에서 읽을 수도 없으며 혼자만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고 있는 이 두 여인들의 마음은 혜자와 에바로 거듭나면서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 사랑도 결국 배워야 한다.

 

 케빈 엄마 에바는 양육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안전하지 않은 날’에 ‘실수’로 만들어진 아들 케빈은 말 그대로 ‘실수’였고 그녀는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토로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말을 다 알아듣는 아들에게 ‘네가 싫다’고 말하는 에바의 모습은 관람자를불편하게 하고 경직되게 한다. 아직 세상이 좁은 아이에게 ‘싫다’,‘좋다’가 전부일 수 있다. 그녀의 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많은 엄마들이 알고 있지만한편으로 공감한다. 에바는 아이와 엄마로서 연결되지 못하고 이방인이 되었으며 충분히 교감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부성이 가득한 남편이 있지만 혼자인 그녀에게 출산이, 육아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고 함께 공감해줄 사람은 없다.

 



 

▲성장기 아들과 진통을 겪는와중 얻게된 둘째 딸. 딸과의 교감에는 어려움이 없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에바를 통해 가족의 형성과 모성의 발현에도 얼마나 많은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모성이 아무리 호르몬의 힘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하더라도 학습과 지혜의 공유가 필요하다. 핵가족화가 산후우울증의 큰 원인 중 하나로 밝혀진것처럼 에바와 같이 ‘뜻하지 않게’ 엄마가 된 사람들은 아이들 못지않게 알려주고 토닥여줄 사람이 필요하다.

 

 



 

혜자는 도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적이 있다. 지능장애가 있는 도준에게 무죄를 입증할만한 기억을 종용하는 와중 엉뚱하게도 아들은 ‘엄마가 농약을 먹였던 기억’을 살려낸다. 일가족동반자살 사건에서 왕왕 보이는 ‘내가 죽으면 아이들은 불행할 것이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살인미수다. 혜자는 극도로 거부하는 진실을 도준은 끄집어낸다. 분명 외롭고 힘들었을 그녀의 인생에 죽음과 맞바꿀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그녀는 행복의 모든 것인 아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자기 인생의 끝에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도 최후라고 생각하는, 바로 자식 역시 자신의 귀속 체인 것이다. 혜자는 아들에게 사랑을 쏟으면서 존재의 이유를 계속 증명해왔고 확인받아 왔다.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으니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 또한 소멸한다. 혜자의 역시 도와줄이 없이 혼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누가 사랑이 쉽다 했던가. 연애 한 번 하는 것도 아이 키우는 것도 결국 사랑은 배우고 부딪혀야 알 수 있는 것이다.

 

 

 

■ 당신의 사랑은 안전합니까?

 

도준은 엄마가 끊임없이 주입시킨 “바보”라는 한마디에 대한 방어기제로 폭력성을 드러내고 케빈은 ‘아는 줄 알았지만 알 수 없었던’ 그 분노가 세상에 드러난다. 아들들의 분노는 살인으로 결과를 맺는다. 햬자와 에바 모두 사람들에게 악마로 손가락질 받는다. 그럼에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음에 불편하다. 두 엄마는 아들은 범죄자가 되었다. 혜자는 아들의 무죄를 무조건 믿고 아들의 악행을 부정한다. 에바는 ‘학살 범’이 된 아들을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혜자는 무죄라는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범죄를 은폐하고 에바는 기꺼이 돌을 맞고 운명을 함께 한다. 관객은 혜자의 무조건 쏟아지는 사랑 끝의 극단적인 선택에 충격을 받고 에바의 비극적인 운명에 가슴 아프다.

 

혜자는 자신의 사랑이 틀리지 않았음에 집착한다. 누가 보아도 아들 ‘끔찍이 아는’ 혜자에게 사랑 이외의 부조리는 없어 보인다. 혜자는 살인을 은폐하는데 성공한 후 헌신으로 포장하고 만족한다. 에바는 교감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 했던 아들의 성장에 대한 죄책감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의 편이 되길 선택한다.

 



 

‘마더’는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혜자의 춤으로 오로지 그녀의 세상 속에서만숨겨진 통한을 풀어낸다. 아무도 알 수 없고 혼자서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이자 자신의 세상을 완성하면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사이에 착하고 순수한 바보 아들은 ‘괴물’이 되었다. 에바의 아들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마음속의 오랜 분노로 가족을 죽이고 친구들을 죽이는 ‘괴물’이 된다. 엄마로서 따뜻하지 못 했던 에바에 대한 분노, 그녀를 괴롭히기 위한 반항으로 비추어지고 학살자로 변한 그의 행동 끝에 에바는 괴물을 키워낸, 성공적인 양육을 하지 못한 이기적인 악마가 된다.

 

 

그 짐이 오롯이 혼자의 것이 되든 세상의 심판을 받든 두 괴물의 엄마는 결과적으로 ‘모성’을 택한다. 바로 안드로메다보다 멀고 지옥의 깊이만큼 알 수 없는 모성의 행로가 방향을 잡는 순간이다. 관객은 함부로 단죄할 수 없고 감싸줄 수도 없다. 이 불편한 결론 앞에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인’것에 마음을 놓고 자신을 돌아본다.

 

 

누가 모성은 타고 나는 것이라 했던가. 연인의 사랑보다도 본능적이고 무조건이라 했던 모성. 모성이 없는 사람은 쉬이 산 사람들의 심판대에 올라 이기심의 수호신인 악마에 견주었다. 하지만 야생의 금수도 생존에의 위협 끝에는 모성을 포기하게 된다. 인간은 모성을 핑계로 영원히 독립하지 못하는 정서불안의 ‘개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들의 삶에 모성은 영원한 사랑이면서 죽을 때까지 등 뒤에 지고 가는 무게다. 혹자는 모성의 그늘에서 독립할 시기를 제대로 찾지 못해 방황하며 애증으로 치닫기도 한다. 어떤 사랑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잔인하게 묵인되거나 강요되는 것은 없다. 연인의 사랑도 부모의 사랑도 경험의 지혜로 배우고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변화하게 된다.

 

한 두 페이지의 백과사전 지식으로, 몇 권의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사랑의 여러 갈래 길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혜자의 세상에서, 에바의 사회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쉽게 손을 내밀 수도 없고 밀어낼 수도 없다. 누가 더 사랑하느냐 저울질하는 연인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소통’을 외치듯이 어떤 사랑도 한 쪽 방향은 없다. 혜자와 도준, 에바와 케빈은 답답하게 갇혀있는 하나의 사랑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랑에서 변질되었다. 그 어떤 것도사랑이 아니었고 모성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직시하고 싶지 않다.

쉼 없이 삐걱거리는 세상에 살면서 모두들 안식처를 찾는다. 그곳은 영원하고 고통도 없을 것 같은 사랑의 공간이지만 그렇게 정형화된 감성 덕분에 갈등을 회피하기도 한다. 가족 간의 갈등을 회피하고 소통을 단절하는 것은 안정이 아닌 불안의 증폭이다. 사랑은 갈등으로 이겨내고 대화하면서 성장한다 하지 않던가. 영화를 보고 느꼈던 불편한 감정은 비단 비정상적인 애정의 증폭이나 상실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이상화된 가정에의 괴리일 것이다. 지금 돌아가서 당신이 할 것은 당신이 직면해있는 사랑의 위기 완벽하다 생각해왔던 틈을 살피는 일이다. 누군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스스로를억누르고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분노의 방아쇠가 될 상처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을 둘러보는 것이 어떤가. 소통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그냥 지나가듯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마더 (2009)

Mother 
7.9
감독
봉준호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전미선
정보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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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2012)

We Need to Talk About Kevin 
8.1
감독
린 램지
출연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시옵한 폴론, 애슐리 게라시모비치
정보
스릴러 | 영국, 미국 | 112 분 | 201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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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