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
출근도 늦는 김에 안나와 알렉스를 보기위해 앉았다가 처참하게 쓰러졌다. 미국 평단에서 마저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는 소문을 뒤로하고 그래도 보고싶었건만 도저희 한(恨)의 정서 따위 알리 없는 미국인의 정서, 구전되는 원작이라도 한번 훑어본적 없는 것이 분명한 대충의 태도가 무척이나 느껴지는 고통이었다. 차라리 슬래셔 무비로 리메이크했다면 이렇게 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 불호가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장화 홍련이건만 정적인 연출이나 심리 묘사따위 할 줄 모르는 어설픈 미국인의 리메이크는 그야말로 언급할 가치 없음이다. 차라리 늘상 내가 진짜 미국판 장화 홍련이라고 말하는 '진저스냅'시리즈를 전부 훑어 주는것이 더욱 재미있고 하물며 마음 한구석 쓸쓸한 감동도있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 DVD타이틀이 발매되고 그럼에도 극단적인 평들을 잘 살펴보면 그러하다. 이 영화가 조용한 것에 화가난 사람들이 악평을 많이 쏟아냈다. 어쨌든 관객의 평이니까 그들은 진저스냅같이 묘하고 특이한 슬래셔를 바랬던것 같다. 하나같이 악평에 논거도 없다. 그냥 본인이 슬래셔를 바랬으나 실망했다. 라고 솔직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어쩌면 내가 열살 때 소나기를 읽고 도대체 이게 뭔가 라고 생각했던 것 처럼 이 영화도 호러라고는 하지만 무언가 같이 맺히는 고리가 있어야 더욱 기억에 남게되나보다.
「진저스냅」을 보았을 때 단순 B급 호러물임에도 한참을 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 역시 언니와 단 둘이기 때문에 간혹 이런식으로 자매애를 '요구'하거나 '시험'하는 내용들을보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니에게 보여주면서 "니가 저런(워울프가 되는)상황이면 내가 죽여줄까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살려줄까?" 라고 하니 "어차피 가망도 없어보이는데 니가 나를 살리려고 해도 죽겠고 도망쳐 봤자 내한테 먹혀죽을테니 잘 생각해라"는 대답을 들었다. 역시 자매가 나오는 「가발」을 보고도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가 말했다.
"저 상황에서 언니가 동생을 죽인건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혹여나 니가 감히 형부를 넘보는 년이되었다가는 안미쳐도 내 손에 죽는다."
-극중 동생은 원혼의 농간으로 형부였던 남자를 실실 꼬신다.- 이렇듯 장화 홍련도 단 둘, 자매만 있는 사람이라면 나 처럼 좀 진지하게 보게되지 않는가 생각한다. 안그런가.
어릴때는 내가 압도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기는 했으나 점점 자라면서 극중 수미(임수정)처럼 거의 나를 리드하여 챙겨왔기 때문에 나는 가슴이 절절했다. 언니는 항상 말이 없고 진중하고, 절대로 자신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고 생각하는 말이 아니고서는 입밖으로 내지않는(나랑 완전 반대)사람이지만 내가 위기에 처해있거나 공공장소에서 봉변(??)을 당한다거나 불이익이 있으면 고길동씨 눈으로 확 돌변해서 쌍심지를 켜고 자신의 상식을 버리고 달려든다. 그래서 엄마나 아빠보다도 언니에 의해 많은 구출을 받았기에 언니와 나는 굉장히 각별하다. 얼마 전 부산에 놀러갔을때 지나가는 중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자애가 나를 보고는 "쳐키 닮았다"고 서슴없이 말을 던졌다.(도대체 요즘 애들은 최소한의 기본 개념도 버린것 같다. 내 두눈을 똑바로 보고 쳐키라고 하다니 비만시절 돼지년 이후로 또 충격) 외모로 인한 모욕은 참으로 많이 들어왔기에 나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흘려듣는 버릇이 있어서. 그 순간 헤헤거리며 웃던 언니가 눈을 희번뜩 떳는데 흰자위에 실핏줄이 터져서는 벌겋게 각성(ㅋㅋ)을 해서 학생주임이 던질듯한 한마디로 강하게 욕을 쏘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무척 찝찝하게 기분나쁘게 만들 수 있는 그 한마디 "어느학교야!"
그렇다. 아직도 나는 나 스스로를 별로 변호를 못한다. 그렇게 나불대고 쓸데없는 소리는 잘 하면서 내 면전에 던지는 모욕도 잘 듣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하지만 언니와 있으면 그런것들은 문제가 안된다. 언니가 변신하는것을 한번 구경하면 모두들 벌벌 떤다. 퐁퐁부인(스폰지밥)에서 순식간에 고길동으로 바뀐다.
"어쩜 나랑 날짜가 똑같을 수가 있지?"
생리 주기 대해 이런 소문이 돌았다. "옆사람이 하면 샘내서 따라 하게된다." 그런줄만 알았지 대학교때 그 말이 맞는말이란걸 배우고는 참으로 인간 역시 동물이구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월경은 번식을 위한 준비이기 때문에 호르몬 자체가 주위 암컷과 주기가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강한 번식의 경쟁자인 주위 암컷이 번식을 위한 준비를 왕성하게 하고있다는것을 느끼게 되면 그에 맞추어 주위 사람들의 호르몬에 급격한 영향을 주는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가족들 중 자매나 모녀의 주기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장화 홍련에서 은주(염정아)가 친모와 닮았다는 이유로 적대감을을 드러내는 수연(문근영)은 증오와 경쟁의 대상이다. 자신과 생리주기가 같다는것에 대한 비웃음 역시 이 적대감의 대히트다. 관객은 은주가 수연을 증오한다는 것, 학대할 것이라는것을 이제 완전히 확신하게된다.
신경질적이고 살벌한 염정아의 연기는 그녀를 새로 보게 만들었다. 미스코리아가 되고 바로 출연한 '우리들의 천국'에서의 어설프고 생긴걸로 밀고나가는 연기력 개나줘버려의 염정아는 정말 옛날 이야기로 끝났다. 극성스럽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비쩍 말라버렸다고 혀를 내두르던 이선진의 증언이 생각난다. 그럴것 같다. 굶어서 마른몸매를 유지하면서도 속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몸매에서도 극성맞은 성격이 드러나는 말라깽이도 있다. 그녀의 극성. 그 캐릭터는 이 영화에 물바른듯 쫙 붙어있다. 임수정도 문근영도 염정아 없이는 살지 못했으리라.
이병우의 음악은 거듭 속을 지른다. 악평자들의 말 처럼 만일 훌륭한 O.S.T가 아니었다면 영화의 분위기는 말아먹었을런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상처를 후벼파는 기타선율은 침울하다. 그리고 들을때 마다 나의 과거처럼 들추어진다. 하지만 이병우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도, 후에 괴물에서도 우리는 들추어내게된다. 나의 과거, 나의 직접 정서인것 처럼 장면들을 들추어내고 감정을 하나 둘 꺼내 소비한다. 이병우는 훌륭하다.
'반전영화'의 유행이 입질이 살~살~ 올라와 몇마리 축축 건지고 있을 때였다. 어느정도 미끼는 던져졌고 예상될 수도 있는 반전이었다. 하지만 그 후 쓰라린 가슴은 어찌나 오래가던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 까지 일어날 수 없었던 수미의 저 쓸쓸한 등은, 항상 비워져 있는 옆자리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 매번 그 순간을 돌고 돌고 죄책감에서 자신을 구하기위해 죽음의 상황을 만들고 생각하고 돌고 돌고 다시 구해내고. 그렇게 해도 이제 절대로 구할 수 없게 된 '자기 자신'은 그렇게 슬픈 구렁텅이에 빠져있다.
장화 홍련의 코드는 귀신, 피가 아니다. 이를 보고 약간의 씁쓸함도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이 찾던 영화가 아니다. 슬래셔를 보려고 온 사람들을 이곳에서 구원해 주어야한다. 차라리 어디가서 피나 한사발 보시는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오묘한 자매애에 대한 고민에 빠진 사람은 오늘 언니에게, 동생에게 시비한번 걸어보자.
[출처] 리메이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꺼내든 원작 :: 장화, 홍련|작성자 고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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