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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11. 1. 21. 18:11 노는사람/남독




효재처럼살아요(효재에세이)
저자 : 이효재 출판사 : 문학동네(구)포도원(도)

 

 

 대학교를 막 졸업 했을 때였다. 웰빙과 살림에 대한 온갖 환상을 심은 내용으로 그녀의 살림 이야기가 잔뜩 실린 '효재처럼' 이라는 책을 충장서림에서 보았다. 골때리는 임동창의 배우자라 하니 이 여자도 보통내기는 아니겠구나 하면서 그냥 고까운 눈으로 보았던 속편한 여자의 솜씨자랑이다. 그 마당과 그 재주와 그런 시간과 그 모든것이 부러움의 이야기지 모든 살림하는 여자의 아주 '여유로운' 표본은 되지 못하겠더라는 것이 나의 신랄한 평이었다.

 이듬해 즈음 '인간극장'에서 그녀를 보기 전 까지 삭막한 내 머릿속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인간극장을 보고도 인터넷에 떠도는 '그녀 처럼 살고 싶다'는 여인들의 울부짖음이 여기저기 퍼지자 뭐랄까 사람은 역시 보고싶은 것 만 보는구나.

 

 '효재처럼 살아요'는 그런 호기심에 대한 답이자 조용한 '경고'이기도하다. 인간극장에서 보여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와 마음가짐뒤의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초월의 바람이 그녀의 입으로 담겨있다. 책 표지는 아주 얄궂게도 가증스러운 공주병의 살림꾼이 저자랑을 하는듯한 멘트를 날리고 있으니 출판사도 결국은 '업자'인지라 그녀의 쓸쓸함을 뒤켠에 숨겨서 고까운 사람은 끝까지 들춰보지도 않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물론 그녀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일년 내내 기약없이 떠돌아 다니는 임동창이 인간극장에도 잠깐 등장한다. 그녀에게 일감을 주러, 배우러 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없이 소녀같고 선녀같던 그녀가 바람같은 신랑의 등장에 설레고 청소하고 음식을 하면서도 '빚더미'에 앉게 했던 그의 악기 공을 죽 늘어놓자 어두운 얼굴로 돌아눕는다. 아, 어찌 신은 이리 공평하신가!

 본인이 언급 한 대로 아이를 낳을 수 없고, 남편은 집을 나가고 죽도록 일만하는 전형적인 '팔자가 센' 그녀의 이야기 뒤에 마냥 겉으로 보이는 여유만 찾는 사람들에 대한 조용한 질타가 있다. 저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는 사람이 가장 기본으로 갖추어야할 '고독'과 '혼자 서기'의 과정을 '충분히 살아온 나이든 여자'의 점잖은 이야기다.  

 

 감히 '효재'의 삶에 비하건만 임동창 못지 않은 남자와 시간을 보냈던 나로서 뭐라 대놓고 동감하기도 어려운 입장에서 그녀의 '통달한' 고독에서 나는 사람이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고독'과 결국 추구 하고 있던 '혼자'의 시간을 느꼈다고 할까. 뭐라고 건방지게 대꾸 하기도 어려운 그런 것이 있다. 아마 책을 읽고 이야기하면서 이처럼 어려운 적도 없었다. 너무나 쉬운 한 사람의 에세이에 이리도 어려운 감정의 이입이랄까.

 

 아이를 낳지 못한 오십대의 여자. 평범하게 지지고 볶지도 못하는 결혼생활을 영위한 안타까운 여자. 조선시대의 순종적인 여인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독립적이고, 그 잘난 요즘 여자라고 하기엔 마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처럼 매우 개방적이다. 임동창이 사르트라만큼 난해한 여자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나(사실 모를 일이지만) 육개월의 '무소식'이 '익숙해질 무렵'이 될 만큼 그녀는 스스로 고독을 받아들일 줄 알고 그것을 통달하는 방법을 안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조용하고 오목조목한 살림살이에만 급급해 있을 뿐 그가 뛰어 넘고 이겨내야 할 인간의 아주 어려운 원론적이 고독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나는 이 책이 출간된지 1년이 지나도록 그녀의 고독에 대해 생각하는 글을 그다지 보지 못했다. 혹은 모두 회피하고자 함일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이 결과를 그대로 예상했을 지 모른다. 내가 영풍문고 죽순이짓을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남편이 비운 자리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고독을 '자신을 사랑함'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고 하는 그녀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어린시절 자신을 유별난 방법으로 사랑했던 아버지의 은공일지도 모른다는 포괄적인 그녀의 철학이 나를 가슴아프게 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런 여유로운 삶의 '복(福)'이 자신이 이런 희안한 운명의 결과임을 조용히 이야기하고 이 또한 복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복쟁이가 되기 싫어했다던 그녀에게 한복을 짓는 손재주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건방지게도 나와 다를 바가 없다고 결론지어본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복(福)'이라고 이야기한다. 조용히 말없는 소녀같은 그녀의 뒷모습에서,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녀의 글에서 나는 동물로서의 인간, 본능으로서의 인간을 느낀다. 호랑이가 자신이 홀로서기의 때를 알게 되듯. 그녀는 얼굴만한 앞다리를 가지지도, 다른 수컷으로 부터 ㅂ목숨걸고 지켜야할 새끼가 없음에도 인간의 특권으로 누릴 수 있는 '나를 사랑함'이 어떤지 알게 해 주는 어른이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손재주, 하물며 '나의 자식이 그녀처럼 창조적이어서 유별났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재수없는 그녀의 제자아닌 제자들로 부터 그녀의 통달한 고독 조차 따르고 배울 수 있는지 여쭙고 싶다. 내가 가능하다는 것이아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사람이 가진 동물로서의 홀로서기와 여타 포유류와는 다른 인간으로서이 독립된 의지를 알고 있는 진정한 실존주의자가 아닌가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이 책을 읽고도 건방지게 함부로 '그녀를 닮고 싶다' 내지 '그녀 처럼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녀만큰 사람으로서의 고독에 맞설 자신이 있는가?'

 

 

 내가 가정을 이루거나 큰 성공을 거두는 것과 관계 없이 그녀의 '어른'으로서의 자세에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사람이란 그래서 금수와 다른 것이다.




내게 아이가 하나 있다며, 그 아이는 남자아이다.
벼락스러운 남자아이가 혼날 짓을 하면,
마당 한구석에 모래밭을 만들어놓고 그리로 불러내서 두들겨 패겠다. 이마도 쥐어박고.
그러면 그 아이는 모래밭으로 꼬꾸라지겠지.
이마엔 모래가 박힐 것이고.
나는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울먹이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데리고 들어와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씻겨줄 것이다.
그리곤 꼭 삶아 빤 하얀 난닝구와 하얀 빤쯔를 입혀서
잠 재우고.
아이가 자라서 학교 갈 때쯤이면
유치원은 보내지 않고 제 아니 꽉 찬 여덟 살에
오솔길을 한참 걸어가야 하는 시골 초등학교에 보내겠다.
어쩌다 하는 서울 나들이엔 어리버리 촌놈 짓을 하겠지.
그런 남자아이의 엄마이고 싶었다."

 

본문28page-

 


효재처럼 살아요

저자
이효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9-04-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 효재,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사람 이효재 성북동 길상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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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