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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10. 1. 30. 01:41 노는사람/남독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저자 피터 빅셀 | 역자 전은경 | 출판사 푸른숲

 

  페터 빅셀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흥을 포스팅중 자주 이야기한다. 중학교 때 처음 읽었던 「책상은 책상이다」의 '충격'은 문학이란것 역시 고도로 짜여진 구조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정'혹은 '감동'이란것을 '주입'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독자인 주제에 감히 '나와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겠구나 라고 멋대로 마음에 들어버린 상황. 페터 빅셀의 간략한 소설들이나 산문들은 그 어떤 가증스러운 감동의 활자보다도 더욱 확실하게 내 가슴에 와서 박힌다.

 그의 단편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산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관찰하고있다. 관찰하는 것의 나열인것 같지만 단 하나도 자신의 관념이나 감성이 담겨있지 않은것이 없다. '봄꽃 처럼 향기로운'이나 '거울처럼 맑은 너의 눈동자'따위 같은 감성을위한 감성의 표현은 무척이나 찾기 어려울지라도 그가 관찰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한마디의 대화 속에서 순간 쓸쓸해지거나 미소지을 수 있으며 경악할 수 있다.

 

 작년에 박완서선생의 산문집 감상을 올리면서 '나이든 사람에 대한 로망'을 언급한 적이있다. 소설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산문으로서 만나는 '어른'이란 존재의 머릿속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알랭 드 보통 처럼 무시무시하고 천재적인 통찰력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무려 스물 다섯쯤 쓴거라니..)그런 천재들 마저 삼사십년  뒤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려 하는걸까 싶을정도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책상은 책상이다」를 읽어보았고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문학선생님의 총애를 받은 적이 있다. 전교 1등도 이겨낼 수 없는 나의 '남독'은 문학선생님 만이 알아주었다. '남독'으로 시발이된 나의 쓸데없는 호기심과 생각들은 대학교를 가거나 취직하는것, 하물며 친구를 사귀는데도 아직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있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 내가 꿈꾸는 먼 훗날이 있다. 나에게 책은 언어영역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언어영역으로 만났던 그 무수한 산문과 소설들은 어른이 되어 새로운 머리로 나에게 다시 읽히고 있다. 독자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지고 작가는 고도의 통찰력으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담아낸다. TV도 없고, 에스컬레이터도 없이 어린시절을 보낸 20세기 태생의 늙은이는 자신이 기억하고있는 변화와 새롭게 만나고, 혹은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추억조차 관찰하듯이 이야기한다. 그냥 스치듯 지나갔던 사람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시절의 동기들이 지금도 살아있을까, 살아있기를 바란다는 무미건조한 그 한줄이 가슴을 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답답해하며 외로움에 발버둥치고 홀로있음에 두려워하고 무언가 끊임없이 '생산'해야만 스스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도착을 해야 문이 열리고 내릴수 있는 고속버스에서도 먼저 짐을 싸들고 일어서서 사람들은 기다린다. 앉아서 도착을 기다리는 순간도 사람들에게는 낭비다. 나는 얼마나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조바심을 내는 내일도, 분노하고 독설을 내 뱉는 어제도 아무런 대가없이 타자를 두들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충분히 나의 시간을 영위하고있다.  

 

 그의 담담한 글귀 속에서도 휘몰아치는 애잔함이 있다. 낡은 서류철 속에서 사별한 아내의 글귀를 보고 또 조용히 추억하는 그의 '나열'은 단 한 방울의 눈물이나 한 마디의 고백 없이 가슴을 고동치게 한다.

 

.... 그녀가 떠난 이후로 구석구석에서 언제나 크고 작은 잡동사니가 발견된다. 아내가 아직 내 옆에 있을 때는 이런 것들이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녀 인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쁘다.  

-본문 「편안하고 질서있는무질서」中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저자
페터 빅셀 지음
출판사
푸른숲 | 2013-12-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고, 어떻게든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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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면 재미있다. 내 만화만큼이나 호불호가 극명하다. 감성적이지 않은 글귀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좋다고 쓴다. 내가좋아한 이유가 바로 거기있기 때문.
 
 
 


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