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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09. 6. 24. 19:59 노는사람/화면


기담 (奇談: Epitaph, 2007)

   정가형제정식정범식
   진구이동규김태우김보경 

 

*이미지출처-네이버 영화

 

 해마다 여름 휴가면 언니와 부산이나 광주에서 영화를 보았다. 당연히 공.포.영.화. 2005년「가발」의 성공, 2006년 무등극장에서 「사이렌」을대.실.패 하고 '올해는 절대로 그러지 맙시다'라는 큰 다짐으로 선택 한 것이 2007년의「기담」이었다. 당시 나는 살도 많~~이빠져서 꾀나 이쁘고(염..)짧은 반바지까지 입고 부산 시내를 휘저으며 공포하면 역시 돌비사운드! 를 외치며 결국 어딜가나 똑같은 롯데 시네마로 직행(ㅋㅋㅋ). 「므이」를 볼까 하다가(안보길 잘..) 포스터가 가장 끌린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그러나 의외로 대.성.공. 무릇 공포영화란 이렇게 사전정보 없이 땡기는대로 골라주는 것이 제맛. 실패 했을 때의 '내 탓이오 내 큰 낫이로소이다.'는 온전히 나의 몫이니 오늘은 그냥 돈버리고 사치하는 날이다 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어떤 공포영화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사이렌은 정말 너무했다.

 

 「기담」의 출연진들 중에서 진구는 참으로 생소했다. 얼마전 막말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였으나 기담에서는 그의 '맛'을 별로 못느낀 것이 사실이다. 시청률 죄다 잡순「올인」도 보지 않았고 조인성이 괜히 싫어 안봤던「비열한 거리」로 작년에야 보았으니 그야말로 나는 '생판 처음' 본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애가 못먹어 보이니 라는 우울한 느낌만 맹숭맹숭 돌고 있었으니 지금도 주연이라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다시봐도 그냥 그렇다.

 

각설하고, 영화얘기.

 

 

「기담」은 시나리오가 참 좋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것이 맞다면 '액자식 구성'(대학교 때도 시나리오는 배웠으나 원래 그렇지 않은가. 대학생은 놀지..)이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가지고 이어진다. 한 쪽으로 크게 쏠리지 않는 캐스팅의 덕도 크다고 본다. 눈에 쏙 들어오는 배우는 김태우이나 그 역시 주연을 해도 조연을 해도 균형을 잃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굿이다. '일제시대'라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수수께끼를 가진 시간. '안성병원'이라는 그냥 '공포'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바로 떠오르는 대표적인 배경.「덴티스트」같은 슬래셔에 도전한 것일까 잠시 생각했지만 아서라, 그래도 대형 자본 들어간 영화다.

 



 

 영화는 실습생 박정남, 엘리트 김인영, 천재의사 이수인 세 사람을 축으로 해서 진행된다. 충분히 공포스러운 '안생(安生:이름좋다)병원'은 사실 무대에 불과하다. 병원 원장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게되지만 사실은 영혼 결혼식이었던 비극의 정남, 얘기하면 스포일러로 두들겨 맞게 되는 가장 불쌍한 인영. 정말 조상이 겐세이놓는지 여하튼 한숨나오는 비운의 천재 인영의 이야기는 각자 진행되면서도 하나의 고리를 가지고 만난다. 왜 예전에 MBC '테마게임'이었나? 그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두 인물의 이야기가 중간에 이어지는 것이 폭소를 자아내게 했던 것 처럼 그들의 고리는 전혀 상관없지만 안타까운 부분에서 이어지고 가슴아프다.

 



 

  아, 도대체 누가!! 자신의 정혼자가 귀신이란 것을 알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기묘한 이야기」의 '영혼 결혼식' 편 처럼  배우자를 저승으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차라리 그냥 데려가 줬으면'이라고 평생을 외치게 만든다. 불쌍한 진구는 전무송으로 늙어 죽을 때까지 귀신마누라의 그늘에서 순탄치 못한 삶을 산다. 영안실에서 주문으로 살아난 원장의 딸은 진구를 자신의 세계로 잠시 끌고 들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산다. 영혼은 위안을 얻었을 지라도 불쌍한 실습생은 첫 경험을 홀딱 벗고 시체와 치르게 되었으니늙을 때 까지 산 것이 참으로 용할 지경이다.

 

  '니 뒤에 누가 있다' 라고 하면 지금 몇몇 놀라겠지. 박정남의 삶은 그렇다. 그는 다른 사람들 처럼 평범하게 결혼해도 마누라는 죽고 힘들게 얻은 외동딸도 자신에 의해, 아니 자신의 조강지처 귀신에 의해 해를 입을까 함께 살지 않는다. 항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누라의 그림자는 평생을 두고 그에게 이승에서의 '재혼'을 용납하지 않았고 함께 있으면 불행이요 혼자 있으면 공포이니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올 줄 알았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늙은 정남의 눈빛에는 두려움도 없고 차라리 편안하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부 인영과 동원.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나치게 평범하게 흐른다. 다른 인물들의 너무나 묘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그냥 평범한 신혼부부의 일상이다.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고  누가 어쨌니, 누구는 어떤 실수를 했니, 오늘 시체는 어땠니(뭐??) 이런 일상적인 장면만 계속 흐른다. 무덤덤하게 보다가 점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너무 쉽게 관객에게 해답을 가져다 준다. '어, 예상은 했지만 그냥 쉽게 보여줄 것이었나?' 싶을 때 다시한번 반전을 가져다 주니 아, 참으로 가슴아프고... 그나마 이 영화에서 시대의 비극을 이야기 해주는 유일한 사건이었나니 시대의 횡포로 입은 상처, 다시 시대의 상처가 되어 죄없는 사람을 죽이게 되는 비극을 낳는다.

 김보경은 사실 「친구」이후로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외모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승마가 취미라더니 몸매의 비결은 그것인가. 홈쇼핑 승마기구 무지 갖고싶다.(찜질방에서 타면 X팔린다)

 



 

"쓸쓸 하구나..."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말 쓸쓸해 졌다. 아, 보는나도 쓸쓸했다.

 

 



 

 수인의 에피소드 속이겠지만 사실 아사코의 이야기가 더 큰 뭉치다. 수인의 죽음도 아사코의 공(?)이 크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수인의 이야기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이 영화를 보고 다른 것 다 집어 치우고 아사코 이야기 때문에 몸서리 쳤다. 교통사고로 혼자 살아남은 아사코. 그녀의 악몽속에 계속 맴돌고있는 죽은 엄마는 지금도 소름끼친다. 감독은 분명히 나 처럼 가위에 많이 눌리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잔인하고 깜짝 놀라는 영화라도 코웃음 치는 나인데 정말 나이먹고 밤 잠을 설친것은 이 현실감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중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너무 놀라 더 크게 뜬 채로 얼어버렸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가위에 눌릴 때 마다 느낀 것과 똑같은 장면, 소리 때문이다.

 

 

 



 

  이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했다. 사실 정말 그것을 캡쳐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블로거 심신의 평화를 위해 자중하자. 「더 셀」을 볼 때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입체영상과 형언할 수 없는 색상들을 보고 감독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더 셀」도 이겼다. 난 지금 깨어있는 채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았다. 이 사람 정말로 나 처럼 가위에 눌리지 않고서야 이런 장면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사코 엄마역의 배우 박지아씨가 직접 생각해 낸 것이라고. 감독이 '음향효과 보다는 방백을 집어넣자'고 하자 연극 무대에서 했던 비슷한 대사를 빨리 하면 좋겠다고 생각 했단다. 제대로 좋다. 개봉 후 박지아씨는 '웅얼귀신'이란 검색어로 한동안 상위권을 차지했고 '엄마 귀신 랩장면'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바로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그녀의 랩은 정말...「미궁」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보자니 더욱 무섭다. 한달 잠을 설쳤다. '쓸쓸 하구나' 를 엎은 명대사 'ㅂㅈㅇㄴㅇㄹㅋㅚㅑㅇㄹㅕㅓㅏㅇㄻㅎㅉㄸㄻㄴㄹ..'

 



 

  나의 국민학교를 기억나게 하는 마루와 창틀.

일제시대 부터 있었던 구건물은 계단을 오를 때 마다  삐걱거려서 아래에는 정말 시체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름다웠던 장면들이 많다 전반적인 공포의 분위기에 한없이 아름다운 색감과 영상들이 펼쳐진다.

 꿈을 꿈처럼 담아내는 영상들. 이 장면의 섬세한 프레임 노가다. 마음에 들었다.

 

 정가형제의 정식은 이전에 「쓰리 몬스터」에서도 불편한 호러를 펼친 적이 있다. 정범식 감독은 작년에 「외톨이」를 개봉했으나 내 마음에는 그다지 들지 않았다. '정가형제'의 이름으로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돈을 반으로 나눠야 하는것이 그들의 유일한 단점이었다는데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이사람들 싸웠나 싶었다. 같이 한번만 더 만들어 볼 순 없겠니? 돈 좀 나누면 어때.

 

 한참 인터넷을 놓고 살던 시절이라 개봉 당시 네티즌의 반응은 잘 모르겠다. 「기담」에 대해서 호평의 기록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한국형 호러'인 모양이다. 원인과 결과가 있고 권선징악과 풀리지 않아 더욱 가슴아픈 한을 담고 있어서 사람들은 공감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래서 뭐? 왜 그랬는데? 어쨌다고?' 라고 끊임없이 트집 잡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설명해주고 아파해주는 공감의 호러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한국 호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고급호러(?)다 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호러영화라면 의례 있는 '이유도 모르겠고~재미도 없고~'라는 악평도 아직은 보지 못했다.

 

'어른이 하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라는 교훈을 담고 있는「주온」의 짜증남. 악마가 깃든 너를 최대한 살려볼테다 라고는 해놓고 '결국은 죽일 것을 시간끌었다' 욕만 나오는 서양식 오컬트.  괜히 대형제작사에서 리메이크 했다가 실패한 저예산 호러들. 큰 개봉작들은 여러가지 지뢰를 놓고 사람들을 시험한다. 아주 적절한 잔인함과 감성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탄탄한 시나리오는 영화를 '장르'에 국한되게 하지 않고 '작품'으로 보게 한다. 「기담」에서 느꼈던 아름다움, 공포, 슬픔은 바로 이런 점에서 여러박자를 맞춘 한곡의 노래같다. 지루함을 느낄 만 하면 떨게하고, 서론이네 본론이네 느낄 새도 없이 진행되는 전개는 많은 준비가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포스터도 예쁘지 않은가. 「기담」이 시작이었다면 이어지는 것도 있어야 한다. '한국형 호러'라는 관용어가 널리 쓰이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은 여기 저기 충격적인 장면들만 차용해온 어설픈 호러들이 나온다. 그래도 항상 '권선징악'을 잃지 않으려는 기틀은 있지 않은가. 많이들 참여 해 주었으면 좋겠다. 대형 스타의 구미로 맞추어진 TV광고같은 영화에 질릴 때도 되었다. 배우도 영화의 부분으로 합세하여 작품 자체의 질을 높이고 관객을 집중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연을 봐서는 잘 모르겠다'라고 하던 「기담」의 성공은 이런 부분까지 배려가 된 것이다. 더욱 '이유있는' 공포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기를. 올해가 안되면 내년이라도 기다려본다.

 

 

 

 

 

 

<오늘의 짤방>

 



 

오 마이 갓!! 데이빗 맥기니스!!

재미도 없는 「컷 런스 딥」을 너 때문에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영화보게 만드는 1人

다니엘 크레이그 때문에 그간 소홀해서 미안해.

 





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