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 화백의 사후, 그녀를 되돌아보게 하는 주간들이 쭉 이어졌다. 내가 김점선을 좋아했던 까닭은 "존경하는 화가" 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화백의 그림에 대해서는 도통 모른다, 현존하는 화가들에 대해서 불신이 무척 컷기 때문에(니 주제에 무슨) 되려 대충보았던 것일 수 있다. 그냥 그림만 보고 마음에 와닿는 화가들은 누구든 좋다. 그림은 그러라고 있는거니까. 하지만 피터지게 공부해야하는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자신의 저서들을 제자를 시키거나 표절로 적지않게 때워먹듯이 말이다....그림도 무시할 일이 아니다. 그림그리는 사람이 해마다 전시를 두세번씩이나 하고, 그나마 같은 주제, 작품을 여러번 하는것은 이해를 당연히 한다만 새롭게 해마다 해먹는것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적어도 전시회를 하려면 그림 한두점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아니고, 워낙에 대작들만 그림 축에 끼워주는 분위기상, 그리고 막상 디스플레이 해놓으면 그릴땐 작지 않아도 지나친 여백때문에 굉장히 작은 소품으로 보이는 특성상. 대작을 몇점(그래도 열점에서 몇십점) 소품은 완전히 갯수로 채우거나 연작을 줄줄 나가게 되는데, 강의도 하고 연구작업도 하는 사람이 과연 그렇게 해마다 개인전으로 새로운 그림을 내어 놓을 수 있는가? 하면 없다. 물론 정말 다작을 하는 사람도있고 엄청난 대작으로 전시회를 하면서 1년 2년을 장소를 바꾸거나 단체전에 출품 하기도한다(작업을 정성들여 한다면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더이상 언급하기엔 내가 너무 힘이 없는 평민이라서 그만하고,
어쨌든 김점선 화백에 대한 호감은 바로 별로 없는 개인전, 쉬운방법으로 재미있게 잔뜩 그린 삽화들, 마음대로 그림그리는 태도, 모르는건 대놓고 모른다고 하는 솔직함, 터프한 척 한줄 알았더니 진짜로 무식하게 터프했던 그 자체다.
앞 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나는 김점선선생이 어떻게 화단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그 과정은 궁금하지 않다. 괜히 파고들었다가 또 안좋은 생각과 선입견으로 내가가진 호감을 스스로 먹칠 해 버릴 수도 있고, 생각했던것 보다 정말 정직한 방법으로 들였을 수도 있고, 내가 가진 호감이 그쪽 바닥에서 어느정도 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정이 어떻건 간에 나는 그녀가 괜찮은 종합예술인(ㅋㅋ)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명색이 막내인지라 아버지께 애교를 많이 부리는편이고 다른집에 비해 아버지도 나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도 어른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머리가 커도 왠만한 대화는 아버지께 지고들어가지만 꿋꿋하게 반목하는 면이있다면 바로 김점선에 대한것이다.
역시, 예전에 언급 한 바와 같이 아버지는 화백처럼 '남자처럼 말하고 머리를 자르고 옷을 입고 건들건들 돌아다니는'여자를 무척 싫어하신다. 옛날분이시라 그렇다. 45년생이시니 화백과 같은 세대다. 아버지는 그런 행동을 괜히 자기가 페미니스트인것 처럼 과장되게 표현하는것이라 생각하신다. 정작 당신은 내가 군인이나 경찰이나 선장이 되길 바라셨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것은 '그냥 마음 껏 살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첫 자서전인 「나, 김점선」에는 첫장부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것을 이야기해준다.
아들을 원하는 세대에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며 민간신앙에 따라 남자옷을 입고 남자처럼 자라게 된 것. 그것을 '유니섹스'하게 키워졌다고 이야기한다.
그 세대들이 대개 같이 경험했든, 전란속에 어린시절은 더욱 거칠었고 공부에만 매진하면서도 그녀의 정신만은 무척이나 자유롭게 성장했다. 바로 그 정서,정신에 대해서만은 강요하지 않았던 가풍에 의해 그냥 '자연스럽게' 여성성과 남성성을 스스로 구분짓지 않고 '그냥 내가 하던대로' 살아온 것이다.
반면 그녀가 '페미니스트'라는 말에는 동감이다. 뒤늦게 자리잡은 민주주의 만큼 우리나라의 여성운동도 굉장히 뒤쳐져있다. 비단 여성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색안경만을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라, 여성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의 태도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많다. 너무 긴 역사속의 역압 때문에 '반목'이 '혁명'과 똑같은 의미로 자리잡은 탓일거라고 본다. 20세기 초 여성참정권이 절실하게 필요하던 그때는 '반복'이 우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도통 머리가 깨지 않은 세상이라 말이 안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속 성장에, 늦기는 해도 지금 현재의 방법은 아니다. 길 가다가 '페미니스트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부정하는 노처녀"나 "이혼을 한번 이상 한 고학력 여성" 또는 "미혼모"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태반 일 것이다.
김점선 화백이 가진 '페미니스트'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원했던 바 그대로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거칠게 말하지만 반목하지 않는다. 아닌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시비걸지 않는다. 그냥 아닌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수양, 자신의 삶을 무척이나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녀는 독립적이다(제발, 독립적이란 말이 이혼이나 결혼폄하가 아니란걸 좀 인식했으면 한다.) 그녀는 다른여자들처럼 사별한 남편을 끝없이 그리워하고, 임신한 자신을 두려워하고, 그럼에도 자식을 키운 엄마다. 그리고 다른시간을 허무하다, 허망하다, 인생의 재미가 없다는 말로 변명하지 않고 화끈하게 놀고 열심히 그렸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하고싶은 일이 있다. 오늘 내가 이불을 전부 빨아버리겠다면 빨면 되는것이고, 요리가 너무 좋다면 요리를 하면된다. 뭔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꼭 사회적으로 진출을하고 집에서 빠져나와 혼자 할일만 한다는것이 아니다. 내 주어진 시간을 허망하지 않게 화끈하게 보내주는것이다. 1946년생인 그녀의 삶에서 그런 화끈하고 마음을 빼앗아 주었던 자취가 우리들 눈에도 보인다는것은 진정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논란이 되었던 그녀의 '막다니는' 스타일링에 대해, 대학시절 그녀는 대등하게 사랑하고 결혼해도 여자는 임신과 육아로 쉬거나 탈락하게 되는것이 너무 두려워 자기 방어의 형태로 '헝클어지게'다녔다고 한다.
"너무 외모가 헝클어져서 겁탈할 사람이 없는 건 물론이고 나를 미친 사람이나 해로운 사람으로 몰아붙여 사회에서 축출하려는 기색이 도처에 나타났다. 자기 보호의 방법의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으로 결혼을 택했다. 안정된 가정을 이룩함으로써 그들과 똑같은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자신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는 평화를 쟁취한것이다." -본문中-
이런 쎈스쟁이.
인생이 못살아도 60년, 그것도 요즘은 젊다고 하는데 말이다. 아까운 63년, 남의 인생인데도 떠나는 순간까지 이사람 너무 바쁘게 살았던것 같다. 아니, 얼마 전까지 뭐 인터뷰도 보고 그림그린다고 하더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갑자기 맞닥드린다. 생의 순간순간이 허비할 수 없는 시간이다. 나는 그래서 김점선 화백이 좋다. 한톨 낭비 하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이 좋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가 고스란히 담은 그녀의 책이 좋다.
[출처] 63년의 소풍 :: 나, 김점선|작성자 고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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