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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09. 4. 12. 15:04 노는사람/남독



호미

저자:박완서 | 출판사:열림원(도)


 20세기 거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박경리 선생의 별세 1주기가 되어간다. 격동의 20세기의 공기를 한껏 몸으로 다 느낀 장본인으로서, 기록자로서 그녀의 임종은 많은 이 들의 가슴에 적잖은 허전함을 안겨주었고 시간이 흐르듯 그 세대의 죽음으로 한 시대의 귀퉁이를 현실에서 떼어놓게 드는 기분 마저 든다.

 

 박경리 선생의 별세 한 해 전 즈음 하여 발매되었던 박완서의 수필집 호미는 남아있는자의 허전한 귀퉁이를 잡고 그 세대를 묻고 그 시간을 듣게 한다. 톡톡 튀는 탄산같은 글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그녀의 글과 건장함을 평론가 김병익은 “노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언급한 바 있다. 지금 그녀의 창작집과 그녀의 수필은 예전의 추억이나, 시대의 잔상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나, 지나온 시대 속에 살아남은 나의 모습이며 아집을 벗어난 한단계 위로 올라선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는’ 원로의 이야기인 것이다.

 

 70대가 된 작가는 말 그대로 ‘할머니’다. 6.25전쟁을 겪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철저하게 주부로서의 삶을 살다가 글을 쓰게된 작가는 그렇게 세련되지도, 현대적이지도 못한 아줌마의 생을 살아온 장본인이며 오로지 글을 씀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화단을 가꾸면서 꽃과 나모에게도 말을 걸고,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꼬마의 집요한 물음에도 전부 대답해주고 이미 부모가 된 자식들의 엄마 이지만, 인생의 뒤켠에서 먼저 떠난 엄마를 또한 그리워하는 나이든 딸의 모습으로 책속에 앉아있다.

 

 작가가 한때 지향했다고 언급했듯이 “자극”과 “촌철살인”의 문체가 아니면 책에 눈을 돌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현대의 삶은 바쁘다. 그리고 “삶 자체가” 어떤 글이나 소설보다 더 자극적이다. 그 가운데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고, 이야기 해 주고 싶어지는 고독을 가진 노인이 된 그녀의 조분조분 하고 소소하고 가시가 뽑혀진 글들은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은퇴라는 이름으로 누구도 꺼내지 않고 연속극에서도 저 뒤로 물러나있는 단지 ‘할머니’일 뿐인 20세기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인생사의 놀라움에 대해서도 느끼게 될 것이다. 산문집의 마지막 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부모의 조바심 담긴 정말 사소한 편지 한 장처럼 그 어떤 그녀의 수필보다도 간소하고 누구나 만나게되는 엄마의 흔한 마음이지만, 그 사소함까지 수많은 이야기들로 우리 곁을 떠나려고 준비하고만 있는 것 같은 쓸쓸함에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이청준의 천년학이 기어이 임권택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 졌을 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불안감 같은것이 있었다. 이미 흥행이나 상업성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두 원로의 천년학은 바로 그 완결편 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고 그 불안함이 맞다 는 것을 증명하듯 박경리의 뒤를 이어 그 역시 우리의 곁을 떠났다. 20세기와 21세기의 과도기를 맛보고 있는 우리에게 20세기의 공기를 맡게 해주는 세대들이 떠나기 시작 하는 것이다. 본인에게도 쓸쓸하고 마음 허전 한 한해였을 2008년의 한 자리에서 우리가 같이 앉아 그 어떤 추억도 아닌 지금의 공기를 같이 마시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것은 어떨까.






호미

저자
박완서 지음
출판사
열림원 | 2009-02-2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박완서, 어느덧 일흔일곱... 요즈음 나이까지 건재하다는 것도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다드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