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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드래기
2014. 3. 16. 13:09 노는사람/화폭

 그림을 볼 때 풍경은 무엇을 보아야하는지 색채인지 말 그대로 기술인지 말그대로 '멋진풍경을 그린 것' 인지 어렵습니다. 

몇 년 전 그리고리 소로카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풍경에도 감정이 담긴다는걸 느끼고 처음으로 굉장히 놀랐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배우고 지랄을 해도 그림보는 눈은 머리로 배워지는게 아니라는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 고흐가 그린 파리가 나이먹어 보면 볼수록, 세대를 거듭해 볼수록 자꾸 남고 눈에 밟히는 (정말 고흐의 그림은 눈에 밟힌다는 표현이 딱이네요) 이유도 그런 때문이겠습니다. 제아무리 인상파화가라고 눈에 보이는 빛을 그립니다 하더라도 그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이란 그런 매력이겠지요. 


 여하튼 그 뒤로 그림 보는 취향이 확실히 인물보다 풍경, 분위기, 구도를 보게되었는데 몇년간 가지게된 취향과 핥은 공부, 또한 내가 풍경을 그렇게 그리지 못하는것에 대한 동경으로 더욱 찾게되었습니다. 그동안 다분히 냉전시대의 영향으로 20세기에 인상파 화풍에 눈이 익은 사람들에게 동유럽, 독일 이북권의 그림들이 새롭게 다가오는것이 그런 이유겠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유행처럼 클림트와  분리파 그림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굳이 전공을 하고 찾아 공부하지 않고는 고흐나 르누아르 다비드나 앵그르, 들라크루아 이외에는 지나치다가도 보기 어려운 그림들을 이제 찾아서 보기 시작합니다. 배운게 다가 아니라는것은 삶에 있어서나 그림공부에 있어서나 다 들어맞는 말이겠지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9.5 ~ 1840.5.7 )는 독일출신입니다. 

코펜하겐에서 그림을 배우고 드레스덴에서 활동하였으며 워낙에 지역에서만 쳐박혀있어서 훨훨 날리지는 못하였고 말년의 작품은 러시아에 산재해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예상해본대로 역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어머니도 어려서 돌아가시고 그시대 그러했듯 형제들도 죽고 얼음이 깨져서 동생이 죽은것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우울의 감성을 몸에 지고 살았습니다.  



 보통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초상화. 게른하르트 폰 퀴겔겐이 그린 그입니다. 성깔있게 그렸습니다. 초상화 공부를 해보거나 유명 화가들의 초상화 작업내용들을 보면 한번에 보고 그리거나 외우고 그리지 않습니다. 사진이 발달한 시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상화는 단지 닮은모습만 그리는게 아니라 얼굴에 나타나는 그의 성격, 마음을 이해하고있다면 완벽한 비율과 기계같은 그림이 아니더라도 오히려 더 닮은 그림을 그릴수 있게됩니다. 클림트도 하루에 한시간씩 그 누구이든간에 초상화 의뢰자는 자기 작업실로 반드시 오게 만들었죠. 그런데 왜 초상화 이야기를 하고있지? 어쨌든 풍랑같은 그의 마음과 유약한 심정이 대조되는 그림입니다.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과 정면대응하고있는 '안개낀 바다 위의 방랑자' 이 그림이 최근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강타했는지 많이 회자됩니다. 혹자는 정복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무력함을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복잡미묘한 그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비슷한 설명을 하고있는 전문가들의 표현을 빌자면 인물이 등장하는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항상 그 인물과 시선이 경계가 됩니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 그리고 다른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 화가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같은 방향의 시선을 향하고 있어 절대적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저의 말이므로 특별히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뒷모습이 그려진 풍경에서는 화가와 인물의 등장이 엄청난 스케일을 느끼게 합니다. 단 한사람의 출연, 두 세사람의 출연으로 더 많은 군중을 머릿속에 그리게 합니다. 저 사람의 시선으로 인해서 내가 군중의 한사람으로 느껴지고 모두 같은 시선을 바라봄으로 절대적인 적막과 반대로 파도치고 살아숨쉬는 자연의 소리가 압박되어 들려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풍경에서는 절대적인 고독과 하물며 압박과 고통이 늑골을 파고듭니다. 


가끔 풍경이 나오는 꿈을 꿀 때 '분명 지구가 둥근게 아니라 일직선일것이다'라고 느끼게 할 정도로 넓은 황야에 혼자 서있는 꿈을 꿉니다. 바로 내가 꿈에서 느꼈던 그 압박과 고통이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맨정신인 상태에서 그대로 느껴져오는것입니다. 이 사람의 그림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홀딱 빠져버렸습니다. 


kreuz im gebirge





Werke von 



 






낭만주의 시대가 그러하듯 그는 신앙심을 바탕으로한 작품을 역시  남겼습니다만 이는 어떤 상징과 이야기의 전달인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자신의 투지가 엿보입니다. 신을 주체로, 신의 시선을 주체로한다면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며 그는 인간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나 역사가 아니라 자연과 피조물을 이야기합니다. 캔버스 안에서 그려졌지만 그 너머로 느껴지는 광활함과 몰려오는 압박.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데 해일처럼 몰려옵니다





 유명한 그림 '해변의 수도승'입니다. 제 방에도 모조품이 걸려있습니다 .

지난번 소로카의 그림에 대해 분명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눈으로는 새가 울고 물이 흐르는것 같은데 내가 귀머거리가 된 듯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반대로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끊임없이 고요한 풍경인데 저 깊은곳에 지구의 맨틀이 대류하는 소리까지 그 엄청난 쿠과과과 하는 소리까지 들려오는듯 합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소리를 불러오고 심장을 뛰게 만든다는것은 정말로 멋지고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몇 살 쯤 되면 풍경에 내 심경을 담을수 있을지 질투와 동경과 아무튼 말로 표현할수 없는 쩌릿함과 몸살이 나는듯한 그의 풍경에 끙끙 앓습니다. 




 해변의 수도승과 함께 제작되었던 '오크숲의 수도원' 입니다. 그의 생존시기를 보시면 알겠지만 독일은 엉망이던 시절입니다. 

모든 비관적인 정서가 깔린 풍경. 그리고 풍경 그 자체로 다른 아무런 메세지도 필요 없는. 


화가가 그럴수만 있다면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할 필요도 없을텐데요. 







uttenwalder grund


Winter Landscap
























제 안드로이드 배경화면입니다. 카톡에도 쓰고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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